한반도 비핵화 아닌 북한 비핵화?
(황방열의 한반도 나침반) '북한 비핵화' 명시한 국회 결의안
2025-03-27 16:59:23 2025-03-27 16:59:23
북한 조선중앙TV는 지난해 11월 1일 김정은 총비서가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포-19'형 시험발사를 직접 지도했다고 보도했다. (사진=뉴시스)
 
지난 13일 국회는 한·미 동맹 강화와 한반도 평화를 위한 협력을 지지하는 '한·미 동맹 지지 결의안'을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트럼프 스톰'이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회가 나서서 한국과 미국이 동맹 관계임을 각인하겠다는 뜻이다.
 
눈에 띄는 것은 북한 핵 문제와 관련해 '한반도 비핵화' 대신 '북한 비핵화'로 명시한 대목이다. "국제사회의 목표인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한미 양국의 노력을 지지하고 이를 적극 뒷받침할 것을 약속한다"고 했다. 지난달에 한·미 양국 정부가 앞으로 북한 핵문제와 관련해 '한반도 비핵화'가 아닌 '북한 비핵화' 표현을 쓰기로 합의한 데 따른 것이다.
 
국회 외통위 법안 심사 소위의 '비핵화' 용어 논쟁
 
지난 6일 이 결의안을 사전 심사한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의 토론은 이 문제에 대한 정부와 여야의 생각을 그대로 보여줬다. 김홍균 외교부 1차관은 10여 전부터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비핵화 용어를 혼용해서 써왔다고 설명한 뒤 "이번에 트럼프 행정부 들어와서는 명확하게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용어를 쓰는 것으로 정리가 됐다"며 "트럼프 행정부가 이 결의안을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한 그런 고려도 하신다면 이번 기회에 북한 비핵화라는 명확한 표현을 집어넣는 것도 좋지 않을까 생각된다"고 제안했다.
 
통일부 차관 출신인 김기웅 국민의힘 의원도 '주한미군 전술핵 재배치'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북한 비핵화' 표현을 주장했다. "주한미군이 옛날처럼 전술핵을 다시 (남한에) 배치할 수도 있다"면서 "궁극적 목표는 한반도 비핵화가 맞지만 한·미 동맹이 당면해서 추진해야 될 부분은 북한 비핵화"라고 했다.
 
야당 의원들은 처음에는 '한반도 비핵화'를 주장했다. 권칠승 민주당 의원은 '북한 비핵화'에 대해 "우리 내부의 아무런 공감대나 또 공론화 과정 없이 그렇게 입장을 바꾼다는 것도 좀 적절해 보이지는 않는다"며 "직설적으로 말씀드리면 북한에는 핵이 없고 남한에는 핵이 있는 것들을 허용하는 거잖아요"라고 반대했다.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러시아 대사를 지낸 같은 당 위성락 의원도 "지금 한국에서 보수 진영을 중심으로 핵무장론이 비등하다"며 "(북한 비핵화 용어로) 잘못 논쟁을 벌이면 핵무장론에 의미 부여가 된다"고 반대했다. 그러면서 "이 논쟁을 계속하지 말고 '한반도 비핵화'로 놔두자"고 했다.
 
김준형 조국혁신당 의원도 "한국의 비핵화에 대한 의지 그리고 북한 비핵화에 대한 의지를 더 담을 수 있는, 전 세계의 비핵화와 반확산에 관한 의지를 밝히는 면에서는 한반도 비핵화가 훨씬 더 국제사회에 호소력이 있다"고 가세했다.
 
한반도 비핵화, '핵 없는 한반도'로 대체 표현하면서 사라졌다
 
그러나 논의 끝에 "핵 없는 한반도를 위해 북한 비핵화를 위해 노력을 지속적으로 강화해 나간다"는 취지로 정리하자는 김기웅 국민의힘 의원의 제안을 민주당이 수용하면서 최종적으로 '북한 비핵화'로 정리됐다. '한반도 비핵화'는 결의문 중 "대한민국 국회는 한미 양국이 연합방위태세를 강화하여 한반도 평화를 공고히 하고, 핵 없는 한반도를 위해 노력하며…"라는 대목의 '핵 없는 한반도'로 대체 표현되면서 사라졌다.
 
'한반도 비핵화'는 1991년 12월에 남북이 합의한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남북 비핵화공동선언)'으로 처음 등장했다. 이후 미·중·일·러까지 이 용어에 동의하면서 유엔 안보리의 모든 북한 관련 결의는 북한 핵 문제 해결의 최종 목표를 '검증 가능한 한반도 비핵화'라고 명시하고 있고 역사상 처음으로 북한과 미국 정상이 만난 2018년 6월 북·미 싱가포르 합의문에도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표현이 들어갔다.
 
그런데 외교적 표현 상당수가 그렇듯 '한반도 비핵화'도 각자가 자기식으로 유리하게 해석하는 용어였다. 1991년 아버지 부시 정부가 남한에서 미국의 전술핵을 철수했다는 점에서 한·미·일은 '한반도 비핵화'를 실질적으로는 '북한 비핵화'라고 해석하지만 북한은 이를 '조선반도 비핵지대화'라고 생각한다. 항공모함, 핵전략 폭격기 같은 미국의 전략자산 전개 등을 포함한 미국의 핵우산까지 철폐돼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의 현재 태도는 이것과도 아예 차원을 달리한다. 2022년 9월 핵 선제공격 등 핵 무력 정책을 법제화한데 이어 2023년 9월에는 헌법을 개정해 "책임적인 핵보유국으로서 나라의 생존권과 발전권을 담보하고 전쟁을 억제하며 지역과 세계의 평화와 안정을 수호하기 위하여 핵무기 발전을 고도화한다"58조)고 격상시켰다. 김정은은 "국가의 기본법으로 영구화”한 것이라며 “일단 보유한 핵은 세월이 흐르고 대가 바뀌여도 국가의 영원한 전략자산"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지난 25일 미국 상원 정보위원회의 전 세계 위협 청문회에 참여하고 있는 털시 개버드 국가정보국 국장. (사진=뉴시스)
 
미 국가정보국 "북한 '핵보유국 승인' 기반 마련"
 
트럼프정부도 '현실'을 인정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부터 거듭 북한을 '핵보유국'(nuclear power)이라 호칭한다. 국가정보국(DNI)도 25일(현지시각) 상원 정보위원회 청문회에 제출한 '연례 위협 평가' 보고서에서 "북한이 최근 군사적·경제적으로 힘을 키우면서 오랫동안 추구해온 ‘핵보유국 승인’ 등의 목표를 실현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고 있다"며 "전략 무기 역량 진전과 수입원 증가가 '국제사회의 핵보유국 인정'이라는 김정은의 오랜 목표를 가능하게 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북한이 러시아와 협력 확대를 활용해 핵보유국 승인을 '희망하고 있을 것'이라던 지난해 평가보다도 더 나아간 것이다.
 
종합하면, 북한 핵문제가 NPT(핵확산방지조약) 탈퇴 이후 강대국 간 지정학 게임의 일부가 되면서 해결 난망한 상황이 된 것이다. 비핵화를 내걸고는 협상 자체가 어려운 상황인데도 그 대상을 북한으로만 한정해 놓으면 더욱 더 돌파구를 찾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결국 '북한 비핵화' 표현 정리는 사실상 한국도 '대화와 합의를 통한 비핵화'는 포기했다는 의미 아닌가?
  
황방열 통일·외교 선임기자 hby@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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