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1일 방북한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서기와 "반갑게 상봉하고 신뢰적이며 따뜻한 분위기 속에서 담화를 나눴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2일 보도했다. (사진=연합뉴스)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서기가 지난 21일 당일치기로 방북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났습니다. 쇼이구 서기는 김 위원장과 2시간여 면담하면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 사실상 푸틴 대통령의 특사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러시아 관영 <타스통신>은 이날 평양발로 이같이 보도하면서 쇼이구 서기가 김 위원장에게 "푸틴 대통령의 따뜻한 인사와 안부를 전하고 싶다"며 "그는 당신과 도달한 합의 이행에 최고의 관심을 기울인다"고 말했다고 전했습니다.
통신에 따르면 그는 러시아와 미국의 대화 초기 단계, 우크라이나 상황, 다른 지역과 특히 한반도의 안보 문제 등 여러 주제에 대해 논의했는데요. 쇼이구 서기는 또 지난해 6월 평양에서 푸틴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서명한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 조약'을 언급한 뒤 "이 조약은 양측의 광범위한 우선순위 분야에서 파트너십과 전략적 협력을 심화하기 위한 러·북 관계 발전의 기본 원칙을 수립한다"고 확인했습니다.
한쪽이 침략 받아 전쟁상태에 처하면 다른 한쪽이 군사 지원을 제공한다는 조항을 포함한 이 조약은 북한과 러시아 간 군사동맹을 복원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데요, 쇼이구 서기는 "러시아는 이 조약 조항을 준수할 무조건적인 준비가 돼 있음을 확인한다"며 "이 문서 체결이 양측 이익에 완전히 부합한다고 확신한다"고 했습니다.
그는 또 "북한 친구들에게 모든 중요한 지정학적 문제와 특히 우크라이나 문제에 대한 러시아의 입장에 연대한 것에 감사를 표하고 싶다"고 말했는데요. 북한과 러시아 양측 모두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을 공식 확인하지 않고 있는 가운데 파병에 대한 감사의 뜻을 표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도 김 위원장이 21일 방북한 쇼이구 서기와 "반갑게 상봉하고 신뢰적이며 따뜻한 분위기 속에서 담화를 나눴다"면서 "담화에서는 조·로(북·러) 두 나라의 안전 이익과 국제적 정의를 수호하기 위한 중요 문제들, 지역 및 국제정세에 관한 양국 지도부의 견해와 의견들이 폭넓게 교환됐으며 완전 일치한 입장을 확인했다"고 22일 보도했습니다.
김정은 "러시아 지지는 확고부동한 선택"
특히 김 위원장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러시아 군대와 인민이 벌리고 있는 특수군사작전은 불굴의 힘과 애국주의, 정의의 위업에 대한 시위"라고 규정했는데요. 그러면서 "앞으로도 국가 주권과 영토 안정, 안전 이익을 수호하기 위한 러시아의 투쟁을 변함없이 지지하려는 것은 북한의 확고부동한 선택이며 견결한 의지"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이와 함께 지난해 6월 체결한 북러 조약 조항을 "무조건적으로 실행해 나갈 두 나라 지도부의 용의가 피력됐다"고 전했습니다. 북한과 러시아 모두 지난해 6월 체결한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 조약'을 ‘무조건’ 이행하겠다고 확인한 겁니다.
통신은 또 김 위원장이 쇼이구 서기에게 푸틴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받은 뒤 "깊은 사의"를 표하면서 푸틴 대통령에게 "전투적 인사"를 전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쇼이구 서기의 이번 방북은 지난해 9월에 이어 불과 6개월 만이어서 주목할 만합니다. 당시 러시아 안보위원회는 두 사람이 러시아와 북한의 양자 문제, 국제문제 등 광범위한 의제를 논의했다면서 북·러 간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 조약을 이행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정부는 쇼이구 서기의 이번 방북에 대해 "시기상으로나 일정상으로나 이례적"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구병삼 통일부 대변인은 24일 정례브리핑에서 "쇼이구 서기 방북을 어떻게 평가하나”라는 질문에 "시기적으로는 안드레이 루덴코 러시아 외무차관이 방북하고 불과 4일 만에 (쇼이구 서기의 방북이) 이뤄진 것"이라며 "일정상으로는 당일 일정으로 방북했는데 이 또한 북한과 러시아 간 거리를 고려할 때 이례적"이라고 답했습니다.
안드레이 루덴코를 단장으로 하는 러시아 외무성 대표단이 지난 14일 평양에 도착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5일 보도했다. (사진=연합뉴스)
정부, 이례적 평가 속…김정은, 5월 전승절에 모스크바 방문?
루덴코 차관은 지난 14~18일 방북해 북한 외무성의 최선희 외무상과 김정규 부상과 회담했는데요, 당시 러시아 외무성은 "고위급 및 최고위급 정치 접촉 일정을 포함해 양자 관계 발전의 현안에 대해 철저히 의견을 교환했다"면서 "2024년 6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북한을 국빈 방문했을 때 합의한 사항들을 이행하는 데 중점을 뒀다"고 공개한 바 있습니다. '최고위급 정치 접촉 일정'이라는 언급이 나오면서 올해 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이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됐습니다. 이미 지난해 6월 평양 정상회담에서 푸틴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게 모스크바 방문을 초대한 바 있습니다.
이런 논의가 진행되던 상황에서 푸틴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국방장관 시절부터 북한을 자주 찾았던 쇼이구 서기가 급작스럽게 그것도 당일치기로 방북한 것은 외무 차관 이상의 고위급 의사소통이 필요한, 긴박한 상황이 발생한 게 아니냐는 겁니다.
구 대변인은 "쇼이구 서기가 국방부 장관이던 2023년 7월 북한의 전승절 열병식에 참석한 직후 그해 9월 김 위원장이 러시아를 방문해 북·러 정상회담을 개최했다"며 "지난해 9월 쇼이구 서기 방북 이후 다음 달부터 북한의 러시아 파병이 본격화됐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이번 방북에서도 양자 간 주요 협의가 있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상황을 엄중하게 주시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이와 관련해 "푸틴 대통령은 친서에서 러시아 파병에 대한 감사 인사와 휴전 후 금명간 북·러 정상회담 개최에 대한 기대를 표명했을 것"이라며 "김 위원장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종결될 때까치 추가 파병과 무기지원을 약속했을 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양 교수는 또 "보도에는 나오지 않았으나 북한은 (러시아에 잡혀있는) 포로의 전원소환을 요구하고 있다"면서 "3∼4월 종전 후 5월 2차 대전 전승절 기념식에 김 위원장을 모스크바에 초청하는 수순으로 논의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습니다.
황방열 선임기자 hb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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