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동맹' 미국, 이렇게 '민감국가' 분류해도 되나
(황방열의 한반도 나침반) 여도 야도 미국에는 한마디도 못 했다
2025-03-20 15:18:39 2025-03-20 16:42:23
미국 에너지부 건물. (사진=연합뉴스)
 
미국의 에너지정책과 원자력 연구·개발 및 군 핵무기 프로그램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에너지부(DOE)가 지난 1월 초 한국을 '민감국가 및 기타 지정국가 목록'(SCL)에 포함한 사건에 대해 조셉 윤 주한 미대사대리는 국민의힘 측의 핵무장 주장 때문이 아니라 "일부 민감한 정보에 대한 취급 부주의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DOE 산하에 로스앨러모스 국립연구소 등 실험실에 가는 한국인들이 너무 많아서 일부 사건이 있었고, 그래서 이 명단이 만들어졌다"고 했다. "큰일이 아니다(it’s not a big deal)"라며 "민감국가 리스트라는 건 오로지 에너지부의 연구소에만 국한된 것"이라고도 했다.
 
미국 에너지부를 예민하게 만들었다는 사례 하나도 보도됐다. 에너지부 산하 아이다호국립연구소(INL)의 연구용역 직원이 수출 통제 대상인 INL 소유의 원자로 설계 소프트웨어(SW) 정보를 가지고 한국행 항공기에 탑승하려다 적발돼 해고됐다는 것이다. 2023년 10월1일부터 2024년 3 31일 사이에 발생한 것으로 보이는 이 사건에 대해 에너지부 감사관실은 직원의 정부 이메일과 메신저 기록을 조사한 결과 "직원과 외국 정부 간 소통이 있었다"고 했다.
 
주한 미 대사대리 "큰일 아니다"…외교장관 "있는 것보다 더 심각"
 
당연히 한국 외교부 설명도 이와 궤를 같이한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핵무장론이든 산업 스파이든 그런 것들이 아니고 기술적 보안 문제라는 것을 미 측이 공개적으로 확인했기 때문에 그것을 믿고 문제를 다루는 것이 가장 적절한 방법"이라고 했다. 지난 1월 초부터 두 달여간 이에 대해 몰랐던 이유를 묻는 추궁에도 "저희만 모르는 게 아니라 미 에너지부 내부 직원들도 모르고 관련된 담당자 소수만 아는 사항"이라며 "내부 비밀문서였기 때문에 모르는 게 당연하다"고 피해 갔다.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나 국무부도 몰랐던 에너지부 차원의 행정조치로 봐야 한다는 취지다. 조 장관은 이번 사안을 엄중하게 보고 있다면서도 "있는 것보다 더 심각하게 받아들여지는 측면이 있다"고 했고, 외교부는 "한국이 민감국가 명단에 있어도 한·미 간 기술 협력에는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미국으로부터 확인했다"는 입장이다.
 
과연 조셉 윤 대사대리나 조태열 장관의 말처럼 "있는 것보다 더 심각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일까?
 
외교부 1차관을 지낸 최종건 연세대 정외과 교수는 자신의 SNS에 "SCL 그 자체도 의미가 크지만, 미국 상무부의 수출 통제 리스트(Export Administration Regulations, EAR)와 국무부의 국제무기거래규정(ITAR)과도 연결돼 하나의 기술 통제 체제를 구성한다"며 "이 리스트에 포함된 국가들은 미국 이 핵심적으로 관리하는 첨단 기술, 에너지 기술, 인공지능(AI), 반도체, 국방 관련 기술 등에 대한 접근이 어려워지거나 혹은 절차에 있어 검토 대상이 된다"고 밝혔다. 이어 "SCL은 단순한 목록이 아니라 국제 경제와 기술 패권을 움직이는 미국의 외교적 도구"라며 "결국 이 리스트에 포함되었다는 것은 한마디로 미국이 해당 국가의 정책을 문제 삼고 있다는 명시적인 메시지"라고 진단했다.
  
실제로 '민감국가'에서 온 인사들은 미국에서 핵 비확산과 원자력 수출 통제를 총괄하는 국립 핵안보국(NNSA) 산하 연구소의 정보·기술·시설에 접근하려면 최소 45일 전에 요청서를 제출해 신원 조회까지 받아야 한다. 이전에는 간단한 승인만 받으면 되는 절차였다.
 
외교부는 한국 내 핵무장 주장과는 관계없다고 극력 강조하고 있다. 외교부로서야 당연한 일이겠으나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정말 보안 문제였다면 미국 에너지부나 그 산하 연구소가 한국의 상대 기관이나 한국 정부에 소명을 요구하거나 항의하는 게 통상 절차다. 그리고 경중에 따라 수사 기관에 넘겨 처벌하는 것이다. 그런데 슬그머니 민감국가로 분류해 놓고는 두 달 넘게 한국 정부에는 일체 통보도 상의도 없었다.
 
 
윤석열씨가 지난 2023년 4월26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국빈만찬을 마친 후 당시 조 바이든 대통령과 함께 무대에 올라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돈 맥클린의 '아메리칸 파이'를 부르고 있다. (사진=뉴시스)
 
"큰일 아니"라면서 한국 전체 '민감국가' 분류…'첨단 기술동맹' 실상?
 
조셉윤 대사대리의 말대로라면, 일개 연구용역 직원의 대단치 않은 보안 사고를 갖고 한국 전체를 민감국가로 분류했다는 것이니, 한마디로 닭 잡는 데 대포를 쐈다는 얘기 아닌가?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도 겨우 그만한 사안을 갖고 외교부, 산업통상자원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관계 부처 차관을 모두 소집해 총력 대응씩이나 지시했다는 것인가?
 
주한 미 대사대리나 외교부의 해명을 그대로 다 받아들여도 문제가 심각하다.
 
"안보 파트너십으로 시작된 한·미 동맹은 민주주의 원칙을 옹호하고 경제협력을 강화하며 기술 발전을 주도하는 진정한 글로벌 동맹으로 성장하고 확장됐다."
 
2023년 4월27일, 윤석열씨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워싱턴 선언'에서 이렇게 선언했다. 당시 대통령실 고위인사는 "한·미 동맹 70주년을 맞아 양국 간 첨단 공급망과 첨단기술 동맹이 이미 강화됐다"고 자랑스러워했다.
 
그로부터 2년 뒤 '기술 발전을 주도하는 진정한 글로벌 동맹'과 '첨단기술 동맹'의 실상이 드러난 것 아닌가? 제일 아래 단계인 기타 지정국가라고는 해도 '보안사건' 하나 갖고 미국이 테러지원국이라며 펄펄 뛰는 북한, 이란, 쿠바 등과 같은 범주로 묶어버렸다. 기존 25개 '민감국가' 중 미국과 문서상 '상호 방위 조약'까지 맺은 동맹국은 한국이 유일하다.
 
그런데도 한국 정치권은 이 사건에 대해 여야를 막론하고 미국에 대해서는 한마디 비판도 하지 못했다. 사전 통보나 상의는커녕 미국 에너지부 담당자가 자리를 비웠다고 일주일이 지나도록 확인도 제대로 안 해주는데도 말이다. 이래서야 미국 정치사 최대의 '매버릭'인 트럼프를 상대할 수 있겠나? 이 정도면 이미 무장해제를 다 해버린 것 아닌가?
  
황방열 통일·외교 선임기자 hby@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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