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한동인 기자] 상호관세를 고리로 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청구서'가 안보 분야까지 '쓰나미'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미국 정부가 국방 분야의 '절충교역'을 무역장벽으로 언급한 게 대표적입니다. 결국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안보 청구서'는 방위비 분담금 인상은 물론 군수품과 기술 이전 등의 각 영역에서 압박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직거래까지 언급함에 따라 한반도 내 안보지형 변화까지 예상됩니다.
지난해 10월 1일 오후 서울 중구 세종대로 일대에서 열린 건군 76주년 국군의 날 기념 시가행진에서 주한 미군부대 장병들이 행진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한국은 머니머신" 실현 본격화
31일(이하 현지시간) 미 무역대표부(USTR)가 발표한 '2025 국가별 무역장벽 보고서'는 "한국 정부는 국방 절충교역 프로그램을 통해 외국 방위 기술보다 국내 기술 및 제품을 우선하는 정책을 추진해왔다"고 명시했습니다.
절충교역은 1000만달러(약 147억원) 이상의 무기나 군수품 등을 해외에서 살 때 반대급부로 기술 이전이나 부품 제·수출, 군수지원 등을 받아내는 교역 방식을 뜻합니다.
USTR 역시 보고서에 이 같은 내용을 적시했습니다. 그럼에도 구체적 사례는 언급하지 못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미국 방산업체가 한국에 무기를 판매할 때 절충교역의 지침에 따라 기술 이전 등을 요구하는 건 무역장벽에 해당한다고 인식한 겁니다. 해당 보고서는 매년 발간하는 보고서인데요. 상호관세 부과를 하루 앞두고 발표된 만큼 국방 분야에 있어 비용 청구서의 기준이 될 전망입니다.
USTR은 한·미 모두 국제공통평가 기준 상호인정협정(CCRA)에 가입돼 있음에도 한국 국가정보원이 보안평가제도(SES)를 통해 사이버 보안 인증 요건을 추가로 부과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이는 한국 공공기관이 조달하는 네트워크 장비에 국가정보원이 인증한 암호화 기능을 포함하도록 요구하는 점 등을 무역장벽으로 적시한 겁니다.
이와 관련해 일각에서는 미국이 한국과의 군수 관련 협상에 활용할 카드를 마련한 것이라는 분석도 내놓고 있습니다. 한·미 양국은 국방 분야의 자유무역협정(FTA)인 상호군수조달협정 체결에 대한 논의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이는 무역장벽을 없애거나 완화하자는 취지의 협정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은 압박은 실제 비용으로 청구될 가능성이 큽니다.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부 장관이 배포한 '임시 국방 전략 지침'의 최우선 과제는 '중국의 대만 침공 저지'와 '미 본토 방어'입니다.
해당 지침에는 '여타 지역에서의 위협을 감수'할 것이라는 문구와 함께 유럽·중동·동아시아 동맹들이 러시아·북한·이란 등의 위협 억제에서 대부분의 역할을 담당할 것이라고 명시돼 있습니다. 이는 미국의 동맹국 안보 우산을 약화하는 대신 각 동맹국들이 방위비를 인상해 스스로를 방어하라는 겁니다.
이대로라면 노무현정부 시기인 지난 2006년 한·미가 합의한 '전략적 유연성'이 주한미군에 적용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주한미군의 역할이 북한의 견제가 아니라 대만 침공 저지를 위한 중국 견제용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여기에 방위비 인상은 예고된 수순이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김흥규 아주대 미중정책연구소 소장은 1일 <뉴스토마토>와 통화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기본적 생각은 세계 패권의 지위를 내려놓고 강대국 중심의 지정학적 국제 정치를 부활시키겠다는 것"이라며 "자신들의 군사적 역량을 강화하면서도 동맹국에 대한 부담은 최대한으로 줄이려는 것으로, 방위비 인상은 정해진 수순"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한국을 '머니 머신'(현금 인출기)이라고 지칭하며 방위비 분담금으로 100억달러(약 14조원)를 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한·미가 타결한 제12차 한·미 방위비 분담금 특별협정(SMA)의 총액이 1조5192억원이라는 걸 고려하면 약 10배에 달하는 인상 요구입니다.
이와 관련해 일본 정부는 선제적으로 방위비 2배 확대를 약속한 바 있습니다. 지난 30일 미·일 국방장관 회담에서도 미국 측의 직접적인 방위비 인상 요구는 없어 일본 내에서는 '안도감'이 퍼졌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결국 트럼프 2기 행정부가 한국에도 최소 2배 이상의 방위비 인상을 요구할 가능성이 큰 셈입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북·미, 비공식 접촉 가능성
트럼프 대통령이 반복해서 밝히고 있는 북·미 정상회담 가능성은 한반도 안보 지형의 변화를 예고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김 위원장에게 연락할 계획이 있느냐'라는 질문에 "나는 어느 시점에 무엇인가를 할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그는 "여러분은 이 말을 듣기를 싫어하지만, 나는 김정은과 좋은 관계를 갖고 있다"면서 "우리는 소통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현재까지 반복적으로 김 위원장과의 관계를 과시하고 있는데요. 실제로 북·미가 비공식 접촉을 하고 있는 것으로 관측됩니다.
김 교수는 "미국에 있어 북한은 한국과 일본, 심지어는 러시아와 중국까지 압박할 수 있는 좋은 카드"라며 "당장에 북한으로부터 얻을 가시적인 성과가 있는 건 아니기 때문에, 임기 중반께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한동인 기자 bbha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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