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민승 법률전문기자] 도로를 지나다 보면 아슬아슬하게 무단횡단하는 사람을 간혹 목격하게 됩니다. 무단횡단은 도로교통법에서 금지하는 행위로 위반하면 20만원 이하의 벌금이나 구류 또는 과료에 처하게 됩니다. 보행자의 안전을 위한 규정이지만 차량이 눈에 보이지 않으면 위험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큰 잘못으로 인식하지 않아, 차량의 통행이 적은 도로나 늦은 시간에는 무단횡단을 더 쉽게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운전 중 무단횡단을 하는 사람을 치어 사망케 했다면, 운전자는 어떤 처벌을 받을까요? 최근 법원은 무단횡단자를 충돌해 사망에 이르게 한 운전자에게 무죄를 선고하는 추세입니다.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2024 월드 스마트시티 엑스포' LH 부스에 스마트 신호등이 전시돼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해 11월경 대전의 왕복 6차로 도로에서 제한속도를 30㎞ 초과해 운행하다 무단횡단하던 사람을 충돌해 숨지게 한 사고가 있었습니다. 이 사고의 운전자는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치사) 혐의로 기소됐지만 최근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법원은 왕복 6차로를 운전하는 운전자로서는 보행자가 갑자기 무단횡단하는 이례적 상황까지 예상해야 할 주의 의무가 없다고 봤습니다. 제한속도를 준수했더라도 무단횡단하는 보행자를 미리 발견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점도 지적했습니다. 운전자가 사고를 예견하거나 회피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과속하지 않았더라도 사고가 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이 증명되지 않았다고 본 겁니다.
비슷한 사건은 이전에도 있었습니다. 2024년 왕복 8차로를 무단횡단하던 보행자를 충돌해 숨지게 한 버스 기사에게 무죄가 선고됐습니다. 버스 기사가 보행자를 인지해 급제동했더라도 충돌을 피할 수 없었다고 판단했습니다.
앞서 2023년에는 해가 뜨기 전 비가 내리는 상황에서 편도 6차로 도로를 운전하던 중 무단횡단하던 사람을 충돌해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로 기소된 운전자가 무죄를 선고받기도 했습니다. 어두운 옷을 입은 보행자를 발견하고 충돌하기까지 시간이 지나치게 짧아 사고를 피하기 어려웠다고 판단한 겁니다.
형법에서는 '과실'을 정상의 주의를 태만히 함으로 인해 죄의 성립 요소인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행위로 규정합니다. 과실로 범죄의 구성 요건을 실현한 과실범은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에 처벌합니다. 교통사고로 사람을 사망이나 상해에 이르게 하는 행위는 대표적인 과실범이고, 5년 이하의 금고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됩니다.
과실범의 구성 요건에 해당하려면 △주의 의무 위반 △구성 요건적 결과 발생 △주의 의무 위반 행위의 결과에 대한 인과관계가 있어야 합니다. 특히 주의 의무는 결과를 예견할 수 있었는지와 결과를 회피할 수 있었는지가 문제가 됩니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교통수단의 운행, 공장의 운영, 건축 등의 활동은 예견이 가능하고 회피할 수 있는 여러 위험이 있지만 사회적 유용성과 필요성으로 인해 전적으로 금지할 수는 없어 일정한 정도의 위험은 사회가 감수해야 합니다. 이러한 위험은 허용된 위험으로 사회적으로 상당해 허용되는 겁니다.
허용된 위험이 특히 발전한 분야가 교통사고인데 신뢰의 원칙이 확립돼 있습니다. 스스로 교통 규칙을 준수한 운전자라면 다른 교통하는 사람들도 교통 규칙을 준수할 것이라고 신뢰하면 충분하고, 규칙을 위반할 것까지 예견해 방어 조치를 취할 의무가 없다는 겁니다. 자동차 사이의 사고에는 신뢰의 원칙이 넓게 적용되지만 자동차와 보행자 사이의 사고에는 제한적으로 적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대법원은 자동차와 보행자 사이의 사고에 관해 △고속도로나 자동차전용도로에서 무단횡단하는 보행자가 있을 것까지 예측할 의무 △횡단보도 신호가 적색일 때 무단횡단하는 보행자가 있을 것까지 예측할 의무 △육교 아래 차도로 뛰어드는 보행자를 예측할 의무 등은 대부분 부정하고 있습니다. 특히 고속도로나 자동차전용도로는 차량만 통행이 가능하고 차량이 고속으로 자주 지나다니는 곳이며 보행자의 접근이 어려우므로 보행자를 발견하면 급정차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대비하면서 운전할 주의 의무가 없다고 봅니다. 보행 신호가 적색인 경우에도 보행자가 갑자기 뛰어나오리라는 것까지 예견할 주의 의무는 없다고 봅니다. 앞서 본 사건들도 이러한 법리에 따라 넓은 도로를 주행하던 중 보행자가 무단횡단을 해 사고가 난 것이므로 운전자가 사고를 예견하거나 회피할 수 없었다는 이유로 무죄로 판결한 겁니다.
무단횡단을 하다 사고가 나면 큰 사고로 이어지기 때문에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넓은 도로를 횡단하려면 긴 시간이 소요되므로 당장 눈에 차량이 보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언제 차량이 나타날지 모릅니다. 특히 어두운 밤이나 보행자가 가로수나 교통시설물 등에 가려져 있다가 나타나면, 운전자 입장에서는 갑자기 나타난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적절한 조치를 취하기가 불가능합니다. 무단횡단 사고는 보행자의 과실이 크기 때문에 적절한 보상을 받기도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교통사고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으므로 항상 안전을 생각해 교통 규칙을 잘 지켜야 합니다. 신뢰의 원칙이 적용되려면 자동차나 보행자의 교통에 필요한 시설이 안전하게 정비되고, 적절한 수준의 교통안전교육 및 질서 의식이 보급돼야 합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교육이나 무단횡단 방지 시설 설치 등 안전 대책 수립이 필요합니다.
김민승 법률전문기자 lawyerms@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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