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주용·차철우 기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첫 다자외교 데뷔 무대에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습니다. 외신은 대체로 '중국 인민 항일 전쟁·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80주년 기념대회'(열병식)의 최대 승자로 김 위원장을 지목했습니다. 방중을 계기로 김 위원장이 세계 무대에서 다자 협력 관계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입니다. 이제 김 위원장의 다음 목표는 미국과의 대화 재개가 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북한이 중국, 러시아와 어깨를 나란히 해 입지를 다진 만큼, 미국과의 협상에서도 이전보다 유리해졌다는 분석입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딸 김주애, '퍼스트레이디' 역할…후계자 '신고식'
4일(현지시간) 현지 언론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이번 방중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경제 관료들을 대거 수행단에 포함시켰습니다. 향후 중국과의 경제 협력을 바라보고 안러경중(안보는 러시아, 경제는 중국) 전략을 구사하기 위한 행보로 보입니다. 김 위원장은 지난 2018년과 2019년 방중 당시에도 베이징 경제기술개발구와 교통지휘센터 등을 둘러봤는데요. 이에 따라 김 위원장은 북한으로 돌아가기 전 베이징에서 경제 시찰에 나설 것이란 전망도 나옵니다. 이 자리에 김 위원장의 딸 김주애도 동행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김주애는 처음으로 김 위원장의 해외 일정에 동행했습니다. <조선중앙통신>이 지난 2일 공개한 김 위원장의 베이징역 도착 사진에서도 주애는 사실상 '퍼스트레이디'(영부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주애는 남색 정장을 입고 중국 측의 의전과 영접을 제일 가까이에서 지켜봤습니다.
주애는 북한 지도부에 존재를 인정받은 유일한 4세대 '백두혈통'에 속합니다. 2022년 11월 김 위원장이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 현지 지도를 위해 현장에 방문했을 때 처음 모습을 드러냈는데요. 김 위원장과 주애의 북한 내 공식 일정 동행 횟수는 40여차례가 넘습니다.
이번 열병식에 나타나지 않았지만 주애는 남은 일정에서 김 위원장을 밀착 수행하며 후계자로서의 존재감을 과시할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 내부엔 '여성 지도자'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타파하고, 후계 구도가 확고하다는 신호를 보내려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국제 사회엔 김 위원장의 뒤를 이을 후계자임을 공식화하고 존재감을 각인시키기 위한 것으로 보이는데요. 특히 단순한 '국내용 연출'에서 벗어나, 중국·러시아 등 우방국 앞에서도 차세대 지도자로서 존재감을 알리기 위한 것이란 평가가 나옵니다.
주애가 김 위원장의 방중에 동행하면서 이번 열병식이 북·중·러 3국의 밀착 관계를 보여주는 단발성 이벤트에 그치지 않고, 후계 구도가 부각되는 무대가 되기도 했는데요. 김 위원장이 북한 체제의 안정성을 과시하려는 의도로도 해석됩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사진=뉴시스)
외신 "글로벌 플레이어"…전문가 "북·미 정상 만남 가능성은 낮아"
외신은 이번 방중 국가 중 김 위원장이 상당한 외교적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했습니다. <로이터통신>은 "은둔형 지도자인 김 위원장이 열병식 참석을 위해 드문 외국 방문에 나섰다"고 전했습니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 10년간 김 위원장은 국제적 고립의 전형이었고, 국제 무대에서 배제된 채 제재를 받는 독재자였다"며 "(이번 열병식 참석은) 열병식의 화려함 속에서 김 위원장은 동맹국과 관계 강화를 통해 이익을 얻은 '글로벌 플레이어'로 변모하는 이정표를 세웠다"고 보도했습니다. 이어 "격화하는 미국과 중국 경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트럼프 대통령의 무역 전쟁으로 인해 변화하는 지정학적 질서에서 북한 입지를 어떻게 '지렛대'로 활용했는지 보여준다"고 분석했습니다.
김 위원장의 최종 목표는 북·미 간 담판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과 러시아와의 연대를 발판으로 미국을 압박할 든든한 뒷배를 확보해 미국과 직거래에 나서겠다는 행보로 분석됩니다. 김 위원장은 이 과정에서 '키맨' 역할을 통해 대내외에 존재감을 과시하고 '핵지위국'으로서 인정받으려 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다만 당장 북·미 정상회담이 개최될 가능성은 낮아 보입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을 계기로 한 북·미 정상회담 개최 여부는 불투명합니다. 그럼에도 김 위원장이 2018년과 2019년 중국을 방문한 뒤 트럼프 대통령과 만났다는 점에서 북·미 대화의 불씨는 남아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중·러 밀착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는데요. 그는 2일 자신의 소셜미디어인 트루스쇼셜에 "북·중·러가 미국을 상대로 공모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김동엽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새롭게 진영화가 돼버려 편이 갈렸다"며 "미국이 줄 카드가 없어 실질적 진전이 불가능해 보인다. (미국의) 제재 카드도 효력이 없으며, 북·미 대화가 이뤄지기 어렵다"고 진단했습니다. 이어 "김 위원장의 이번 방중은 북한의 전략적 가치 극대화의 행보"라며 "북한은 중국·러시아라는 체스판을 모두 활용해 몸값을 올리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
차철우 기자 chamato@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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