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진아 기자] 전 세계를 상대로 한 미국의 상호관세 부과를 1주일가량 앞두고, 현대차그룹이 앞으로 4년간 미국에 총 210억달러(약 31조원)를 투자한다고 24일(현지시간) 발표했습니다. 국내 기업의 첫 대규모 대미 투자가 이뤄지면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정책 변화를 기대하는 기류도 조심스럽게 엿보입니다. 하지만 국내 기업의 '통 큰' 선물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다음 달 부과한다고 예고한 상호관세의 '표적'에 한국이 포함될 것이라는 우려는 여전합니다. 상호관세 대상이 품목보다 무역적자 규모가 큰 국가로 초점이 맞춰지면서 미국 입장에선 주요 무역적자국인 한국을 포함할 것이라는 이유에서입니다. 상호관세 대상에 한국이 포함될 가능성이 짙어지면서 정부도 대비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입니다.
현대차 '통 큰' 선물에도…상호관세 대상 가능성 ↑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이날 백악관 루스벨트 룸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주재한 행사에 참석해 "향후 4년간 (미국 내) 210억달러 규모의 추가 신규 투자를 기쁜 마음으로 발표한다"며 "우리의 미국 내 공급망 현지화를 가속화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후 한국 기업이 대규모 현지 투자 계획을 밝힌 것은 현대차그룹이 처음입니다.
이 같은 대규모 대미 투자에 한국이 다른 나라보다 더 낮은 관세율을 적용받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평가도 나옵니다. 실제 <뉴욕타임스(NYT)>는 "현대차가 미국에 더 많은 투자를 약속함으로써 한국이 관세를 피하거나 적어도 다른 나라보다 낮은 관세를 적용받을 수 있도록 도울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습니다.
하지만 다음 달 2일 상호관세 발표를 앞두고 한국이 표적 대상이 될 것이라는 우려는 여전합니다. 주요 외신들 역시 한국이 상호관세의 표적이 될 것이라는 경고를 잇따라 내놨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23일 "이번 상호관세 조치는 애초 예상보다 더 표적화된 형태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는데요.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4월2일 상호관세와 함께 자동차·반도체 등 품목별 관세를 시행하겠다고 밝혀왔는데, 실제로는 대미 흑자국을 중심으로 한 '표적 관세'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그러면서 <WSJ>은 트럼프 행정부가 다음 달 발표할 상호관세 대상국이 최근 미 무역대표부(USTR)가 무역 불균형을 지적한 국가와 유사할 것이라며 "미국의 가장 중요한 무역 상대국에 대한 관세가 수십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인상될 수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USTR이 언급한 국가에는 유럽연합(EU)·호주·캐나다·중국·인도·일본·멕시코·대만 등과 함께 한국이 포함됐습니다.
특히 <WSJ>은 상호관세 부과 대상은 소위 '더티 15(Dirty 15)'로 명명된 국가들이 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더티 15'는 스콧 베센트 미 재무부 장관이 지난 18일 "더티 15로 부르는 국가들은 상당한 관세를 (미국에) 부과하고 있다"고 언급하면서 알려진 말입니다. 베센트 장관은 구체적인 국가명을 밝히지 않았지만 대미 흑자 규모가 큰 국가를 뜻하는 말로 해석됩니다. <블룸버그통신> 역시 "트럼프 대통령이 상호관세 문제를 논의할 때 무역 침해국으로 EU·멕시코·일본·한국·캐나다·인도·중국을 언급해왔다"면서 이 국가들이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특정 국가들을 선별해 고율 관세를 매길 경우 미국의 관세 폭탄이 무역적자국 8위인 한국을 조준할 가능성이 큽니다. 미 상무부에 따르면 한국의 지난해 대미 무역흑자액은 660억달러로, 미국 입장에선 한국은 8번째로 무역적자액이 많은 교역국입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짙어지는 관세 타깃에 정부 '총력전'
문제는 자동차·반도체 등 특정 품목을 대상으로 한 관세가 유예되더라도, 수입품 전반에 관세를 매기면 대미 수출에 미치는 여파도 작지 않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때문에 정부는 미국의 상호관세 칼날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대비에 나섰습니다. 미국산 유전자변형생물체(LMO) 감자에 대해 지난달 '수입 적합' 판정을 내린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됩니다.
탄핵심판 기각 결정으로 직무에 복귀한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통상관계장관간담회를 긴급 개최하고 미국 상호관세 발표에 대한 점검·대응을 철저히 해달라고 관계부처에 지시했습니다. 또 그간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주재해온 대외경제현안간담회를 '경제안보전략 태스크포스(TF)'로 격상해 주재하기로 했습니다.
산업통상자원부도 한국에 적용될 상호관세율을 최대한 낮추는 데 주력하는 한편, EU·일본 등 주요 경쟁국보다 상대적으로 유리한 입지를 확보하는 쪽으로 대미 협상의 초점을 맞추는 데 온 힘을 쏟아붓고 있습니다. 산업부 관계자는 전날 기자단 브리핑에서 "4월2일 상호관세 부과를 전제로 대응하기 위한 준비를 하는 상태"라며 "대미 수출이 많은 품목이 (상호관세에) 가장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 어떤 영향이 있을지, 어떤 식으로 지원할 수 있을지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20~21일 미국을 방문한 안덕근 산업부 장관 역시 워싱턴 DC에서 열린 특파원 간담회에서 "대부분의 국가가 관세 조치의 영향을 피하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미국의 관세정책에 대한 대응은 단판 승부가 아닌 만큼 우리 산업에 미칠 영향을 지속적으로 축소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정부의 이 같은 노력에도 국가수반 공백을 이유로 대비책에 한계가 뒤따른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관세 폭탄을 당한 중국과 유럽은 보복관세로 맞불을 놓으면서도 물밑에서는 치열한 협상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탄핵 정국에 휩싸인 우리 정부는 협상은커녕, 전략을 제대로 짤 리더가 없어 다른 나라에 비해 경쟁력에 밀린다는 지적입니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대외 부분이 큰 한국으로선 트럼프 집권이 가장 큰 위협 요인인데, 이를 빨리 해결할 리더가 없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라며 "수출 타격이 생각보다 크면서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1% 중반대로 내려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운데)가 2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통상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박진아 기자 toyouja@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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